내게 영향을 많이 끼친 음악 장르를 고르라고 하면 얼터너티브 록은 빠질 수 없다. 사실 그 장르가 도대체 무슨 음악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도 쉽지 않고 (사실상 90년대 초중반 메탈을 제외한 기타기반 록은 다 얼터너티브라고 불렸던 게 아닐까..), 개중 몇몇 특정 밴드만 골라서 열심히 들었던 것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얼터너티브 록과 관련된, 음악적인 소양과 관심을 넓혀 준 뚜렷이 기억나는 계기가 몇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는 Nirvana에 관한 것이다.
학창시절 잠깐 다녔던 영어학원에는 말투가 술 한잔 걸친 듯 꼬부라지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던 선생이 있었다. 하루는 그분이 수업을 하기가 싫었는지 대단한 걸 들려 주겠다며 웬 비디오를 틀었는데, 그게 바로 이 영상이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노래를 왜 그 꼬마애들한테 들려줬는지부터가 알 수 없을 노릇인데, 그걸 빼고도 이 영상은 가수라곤 지오디 보아 백스트리트보이즈 셀린디옹 같은 사람들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곡 자체부터 여태껏 들어온 음악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구전요의 커버이지만). 거기에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대로 걸친 듯한 의상에 세상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와 표정. 음정과 박자는 개나 줘버렸고 마지막에는 절규에 이어 시원하게 역대급 음이탈까지 내 주신다.
선생은 노래가 끝난 후 이 사람들의 위대함에 대해 몇 마디 말을 덧붙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요즘엔 들을 노래가 없어' 류의 꼰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내용은 중요치 않았다. 이 MTV 라이브 당시가 커트코베인의 마약과 죽음과의 마지막 사투에 가까운 시기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질풍노도의 어린 마음에 반항, 분노, 처절함, 이런 분위기에 압도되면서 마지막 삑사리 이후 눈을 치켜뜨는 그의 모습이 어떤 몸을 내던지는 투혼 같이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너바나라는 단어조차 그 때 처음 들어본 나는 그 뒤로 마침 그 시기 발매된 베스트앨범부터 시작해서 한동안 그들의 음악만 찾아 들었다. 그게 이후 Dave Grohl의 Foo Fighters까지 연결된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도 겨울날 집 주변을 걸어다니다 보면 <You Know You're Right>의 기타 사운드가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하고 많은 그들의 유명한 노래들 중 하필..). 그리고 그 기억은 그 당시 나의 불안정하고 어리고 바보같았던 마음 상태와 분위기에 대한 기억을 같이 불러온다. 그럼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 살짝 드는데, 그 때문인지 Nirvana의 음악을 지금 와서 다시 찾아 듣기란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선 쉽지 않다.
그 때는 이들 음악과 퍼포먼스가 내포하는 파괴(거의 파괴신 급이다. 공연마다 최소 1기타 1드럼셋씩은 해드신듯. 그럴거면 나나 주지 말이다), 마약, 반항, 저항,개썅마이웨이, 히피, 뭐 이런 종류의 분위기가 끌려서 열심히 들었던 것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적으면서 순수히 음악으로만 감상하려고 노력했을 때, 이들의 음악은 메탈은 물론이고 하드록이나 Green Day니 The Offspring이니 하는 펑크와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아니 사실 파워코드를 즐겨 사용한다는 사실이나 비트 정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성이 없지 않을까 (전문가가 아니므로 확신하긴 어렵다)? 오히려 굉장히 팝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다.
Nirvana -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MTV Live 1993, American Folk Song)
학창시절 잠깐 다녔던 영어학원에는 말투가 술 한잔 걸친 듯 꼬부라지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던 선생이 있었다. 하루는 그분이 수업을 하기가 싫었는지 대단한 걸 들려 주겠다며 웬 비디오를 틀었는데, 그게 바로 이 영상이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노래를 왜 그 꼬마애들한테 들려줬는지부터가 알 수 없을 노릇인데, 그걸 빼고도 이 영상은 가수라곤 지오디 보아 백스트리트보이즈 셀린디옹 같은 사람들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곡 자체부터 여태껏 들어온 음악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구전요의 커버이지만). 거기에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대로 걸친 듯한 의상에 세상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와 표정. 음정과 박자는 개나 줘버렸고 마지막에는 절규에 이어 시원하게 역대급 음이탈까지 내 주신다.
Nirvana - You Know You're Right
그 때는 이들 음악과 퍼포먼스가 내포하는 파괴(거의 파괴신 급이다. 공연마다 최소 1기타 1드럼셋씩은 해드신듯. 그럴거면 나나 주지 말이다), 마약, 반항, 저항,
Nirvana - Lithium
그리고 생각보다 복잡하다. 난 <In Bloom> 이나 <Lithium> 같은 곡은 아직도 코드진행이 해석이 잘 안 된다. 물론 내가 해석 못한다고 어렵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레딧 고수들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 이들이 화성학적으로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뭔가 새로운 걸 해낸 건 분명하다. 내 짧은 음악 지식으로는 아직 Nirvana 같은 화성과 멜로디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쨌든 이들은 음악사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약 5년을 화려하게 불태운 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근 10년이 지나 나는 이들의 음악을 미친듯이 듣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의 다시는 꺼내들지 않았다. 그래도 Nirvana는 내게 음악을 대하는 정말 특별한 태도를 알려준 뮤지션으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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