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클라우드 - My Dear, My Lover


시차적응이라는 과정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정신없이 돌아간 일정 속에서 가장 심적으로 여유있던 시간은 새벽에 집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이었다. 그 시간에 이 앨범을 처음부터 듣곤 했는데, 차가워서 담이 걸릴 듯한 날씨와 사람들이 쓸쓸히 총총거리며 걸어가는 풍경 속에서 노래를 듣다 보면 조금씩 먹먹해지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출근길에 걷는 시간은 앨범 러닝타임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고 뭉근해지던 기분은 지하철역에 다다르자마자 빼곡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사라졌기 때문에,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뒤 절반의 곡을 들으며 걸었다. 그러면 추위에 종종걸음을 걸으면서도 마음만은 가라앉는 그 기분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디어클라우드 - 네 곁에 있어

디어클라우드의 <My Dear, My Lover> 앨범은 정말 잘 만든 호소력있는 앨범이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도를 높인 음악이라고 느끼는 건 어렵지 않다. 모든 악기가 순간순간에 필요한 소리를 필요한 만큼 내 주면서 그들만의 세련된 소리를 만든다. <Wallflowers> 나 <Shining Bright>, <안녕 그대 안녕> 등의 곡에서 들리듯 트렌디한 신디 소리도 많이 섞었는데, 그 소리들이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라 뒤쪽에서 깔리는 게 앨범 자켓에 어울리는 우주적인 느낌을 낸다. 그리고 나인의 목소리는 절대 과하지 않고 질리지 않게 노래의 중심을 잡는다.



디어클라우드 - Walflowers

내 감정을 건드리는 호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지 생각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소리가 특이하다거나 특별한 코드진행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던하고 깔끔한 사운드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그보다 멜로디를 먼저 꼽고 싶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점이 특별하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이 앨범의 멜로디는 마냥 자연스럽기만 하다. <네 곁에 있어>를 생각해 보면, verse에서는 계이름 도에서 솔까지 하나씩 올라가고 후렴에서는 도에서 솔까지, 또 솔에서 도까지 떨어지는 느낌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음을 하나씩 올리는 과정, 그리고 중간중간 음을 여러 계단 떨어뜨리고 올리는 변화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steps와 skips를 잘 섞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분명 들어본 듯하지만 새로운 느낌이 있는데,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 때쯤이면 나도 좋은 멜로디를 쓰게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일상에서 겪는 어떤 순간 속에서 솔직한 생각이나 감정을 잡아내는 가사도 중요하게 볼 수 있겠다. "어두운 방 안에 몸을 웅크리다 생각했어 / 넌 언젠가 모두를 놓아 버렸던걸 후회할까",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속에 남아 / 넌 외로워 좀 슬쓸해 그래 보여" 같은. 존재에게 위로를 주는 가사도 좋다. "그대의 젖은 눈을 보면 나는 또다시 그댈 믿을지도 몰라"나 "넌 쓸쓸한 마음을 여미고 원망했을까 날 미워했을까 넌" 같은 가사에서는 이들만의 아픈 사랑의 감정이 느껴져서 슬프다. 가사에 이미 진솔하고 절절한 감정이 실려 있기에 별다른 기교가 필요 없이 듣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것 같다.


디어클라우드 - My Lover

스트리밍 시대에 11곡은 좀처럼 끝까지 듣기 어려운 양이다. 그렇지만 디어클라우드의 이 앨범은 버릴 곡이 없이 잘 만들어졌다.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도 통일성이 있는 가운데 감정이나 강약이 잘 조절되는 느낌이다. 조용한 피아노 연주에 목소리를 얹은 <My Dear>와 풀밴드 연주 속에 긴 기타 솔로가 이어지는 <My Lover>는 하나인 것 같이 따로인 두 곡인데, 감정을 고조시키면서 여운을 남기는 좋은 마무리다. 흐리고 어두운 서울 새벽길의 풍경과 함께 이 앨범은 아마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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