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악을 어딘가로 분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문 기사의 단어들을 랜덤하게 오려붙여 시를 만드는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 앨범은 (참고), 과연 모든 경계와 구분을 초월해 날아다닌다. 내 몸뚱이를 벗어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관조적인 경험의 극치이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춤추고 싶게 만드는 최면이다. 이게 무려 17년 전 발매된 앨범이라는 게 충격적이다.
Radiohead -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첫 곡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부터 소리와 반복적인 외침의 향연이다. 타이틀곡 <Kid A> 도입부에선 이 앨범이 인생에서 기억될 음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감할 수 있었는데, 뒤이어 들어오는 드럼 리듬도 특이하고, 중반부 이후에 들어오는 여러 무질서한 소리들도 즐겁다. 분위기를 바꿔서 강렬한 베이스 리프로 시작하는 <The National Anthem>은 역시 곡의 반절이 지나갈 즈음 각종 금관악기들이 노이즈를 내기 시작하면서 혼돈의 현대음악이 펼쳐진다. <How to Disappear Completely>에서는 공간감을 잔뜩 먹인 기타와 오케스트라가 인상적이다.
후렴의 감성이 <In Rainbows> 앨범의 <Bodysnatchers>를 떠올리게 했던 <Optimistic>은 시종일관 annoying하게 긁어대는 기타 소리가 우울한 분위기와 'You can try the best you can, the best you can is good enough'하는 가사와 어울리는 곡이다. 후렴구에서 나오는 한 음씩 올라가는 진행의 소리가 진짜 좋다. 역시나 후반에 가서는 카오스로 치닫는데, 음울하고 자못 장엄하게 나가다가 뜬금없이 jazzy한 드럼비트로 바뀌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그리고선 바로 <In Limbo>가 흘러나오는데, 곡의 인트로와 간주에 깔리는 소리가 중독성있는데 어떤 소린지 궁금하다. 그 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강렬하게 남은 곡이다. 이 곡도 뒤로 가서는 모든 소리가 뒤엉키고 모든 게 빨려 들어가면서 어떤 전자 소리만 남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Radiohead - Idioteque
이렇게 자연스럽게 <Idioteque>로 넘어가게 되는데, 강렬하면서 미묘하게 변화하는 비트, 몽환적인 4-chord, 박자를 아무도 모르게 5/4박으로 바꾸기도 하면서 이어지는 멜로디,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자잘한 소리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프로듀싱과 믹싱까지 완벽한 곡이다. 여기 쓰인 chord progression이 1970년대의 컴퓨터 음악 샘플링이라는 사실도 나름 충격적이다.
Paul Lansky - Mild und Leise
(샘플링한 구간은 40여초대에 딱 한 번 나온다)
곡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노이즈는 비트가 멈춘 이후에도 살아남아 다음 곡 <Morning Bell>까지 이어진다 (곡 사이에 이런 연결 좋다). 이때부터 앨범은 차분해지는데, 이 곡과 <Motion Picture Soundtrack>도 정말로 좋은 곡들이다. 차분하고 특이한 비트와 함께하는 <Morning Bell>은 노이즈가 섞여 들어왔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부분과, 후반부에서 기타 솔로(=노이즈)와 함께 나오는 동동동거리는 음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Motion Picture Soundtrack>이라는 아련돋는 제목의 곡은 가사에 여러 해석이 난무하는 듯한데, 곡 자체로만 봤을 땐 찌질한(?) 인간의 읊조림으로 듣는 게 편했다. "I'll see you in the next life"는 완벽한 앨범의 마무리 같다. 앨범은 그대로 끝나지 않고 약 1분간의 앰비언트한 소리(<Untitled>)가 이어진 후 마무리된다.
Radiohead - Motion Picture Soundtrack
워낙 뛰어난 앨범인지라 해석도 분분하고, 앨범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테마도 (특히 가사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모든 요소들을 알아가기엔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냥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왜 이 음반이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라고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라디오헤드 빠돌순이인 피치포크의 리뷰(링크)가 궁금해 읽어 보았는데, 라디오헤드를 인간 이상의 거의 신 취급하는 사생팬 수준의 글에는 나의 감상을 드러내주는 표현들이 꽤 있었다.
"Kid A makes rock and roll childish. Considerations on its merits as "rock" (i.e. its radio fodder potential, its guitar riffs, and its hooks) are pointless. Comparing this to other albums is like comparing an aquarium to blue construction paper."
"This is an emotional, psychological experience. Kid A sounds like a clouded brain trying to recall an alien abduction. It's the sound of a band, and its leader, losing faith in themselves, destroying themselves, and subsequently rebuilding a perfect entity. In other words, Radiohead hated being Radiohead, but ended up with the most ideal, natural Radiohead record yet."
"The experience and emotions tied to listening to Kid A are like witnessing the stillborn birth of a child while simultaneously having the opportunity to see her play in the afterlife on Imax. It's an album of sparking paradox. It's cacophonous yet tranquil, experimental yet familiar, foreign yet womb-like, spacious yet visceral, textured yet vaporous, awakening yet dreamlike, infinite yet 48 min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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