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게 된 파라솔의 "경마장 다녀오는 길"은 앞서 포스팅한 O.O.O의 "나는 왜" 만큼이나 신선한 곡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풋풋하면서 이상주의적인 느낌이 들었던 "나는 왜"와 달리 이 곡은 염세적이고 무심하며 마약에 찌든듯하다.
베이스 리프와 톤에서, 그리고 근음에 마이너 1도화음과 4도화음을 오가는 코드진행에서 과거 음악의 향수가 느껴진다. 그러나 얼핏 Tame Impala 같은 2010년대 초반의 밴드 사운드 같기도 하다. 이런 부조화도 밴드의 컨셉인 것인지, 시니컬한 곡조 및 가사와 달리 뮤직비디오의 로케와 색감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늘어지던 곡은 잠깐의 간주에 이은 후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데, 이 멜로디와 진행이 꽤 좋다. 1도 메이저 화음으로 마무리되는 여운은 곡 전체를 지배하던 우울한 분위기를 마지막 순간에 반전시킨다.
파라솔 - 경마장 다녀오는 길 (M/V)
파라솔 - 경마장 다녀오는 길 (가사)
오늘도 같은 잠바에 늘 입던 바지를 입고
항상 같은 번호를 골라 혹시 하는 마음으로
어제 앉았던 자리엔 다른 사람의 등이 보이고
잠깐 고민하다가 다른 자리를 둘러보는데
시작 총소리가 울리고
트랙을 빙빙 도는 경주마들
어느새 경주는 끝나고
두 번 다시는 안 올 거라 다짐을 하네
오늘도 같은 잠바에 늘 입던 바지를 입고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른 번호를 골라보네
어젯밤 꿈에 나타난 털이 노란 돼지 세 마리
왠지 들뜬 마음에 맨 앞자리로 걸어갔네
3번 말이 비틀거리고
내 옆에 털썩 주저앉은 남자와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남자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지막 식사를 하고서
한때 사랑한 사람들과 작별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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