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loomy Selection



특별히 우울한 날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마음이 착 가라앉는 선곡을 하게 된 하루였다.

못 - 클로즈 (Live 올댓뮤직)

이 노래는 verse의 키보드 멜로디가 치명적이다.  단순하지만 날카롭게 폐부를 찌른다. 또 이 곡은 다이나믹이 가사의 감정과 일치한다. 2절의 '전화를 걸어'와 '끊어버렸어' 사이의 정적. 후렴에선, 노래를 태워버리고 재를 마셔버리는 소절에서는 반주가 같이 끓어오르고 '오 미안, 오 이젠' 이라고 할 때는 애절한 보컬과 함께 함께 반주도 쉬어간다. '작별 인사를 해야지'에서 마치 감정을 누르고 굳은 다짐을 하듯 연주가 세졌다가 '내 마음을 닫을 시간이야' 에서 클로징한다. 가사 자체의 시적인 표현들도 그렇지만, 이 가사가 음악에서 풀어지는 과정이 이 노래의 우울함을 극대화해준다. 아주 묘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이이언의 보컬 능력은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Coldplay - Spies

콜드플레이의 이 곡은 "클로즈"에 비해 차갑게 격정적이다. Verse에서는 크리스 마틴의 체념조의 보컬과 기타의 보이싱이 차분하다. Verse 중간쯤부터 들어오는 조니 특유의 딜레이걸린 기타가 공간감을 내는데, 후렴에서는 이게 극대화된다. 드럼은 탐 위주로 퉁퉁거리며 연주하고 (브릿지로 넘어가면서는 탐 대신 스네어를 적극적으로 쓴다) 베이스는 아예 마디의 반 가량을 비운다. 이런 공간감에 크리스마틴의 팔세토까지 어울려서 우주적인 느낌을 낸다. 광활한 곳에 나 혼자 떨어진 듯한, 외로움을 넘어 약간의 절망감을 동반한 압도되는 느낌이 있다.

이 곡이 포함된 콜드플레이의 1집을 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다. "Yellow"가 매우 유명하지만 사실 이 앨범엔 "Don't Panic", "Trouble", "Spies", "Sparks"등 굉장히 어쿠스틱하고 음울한 매력을 가진 곡이 많다. 


Bonobo - Silver

우울함의 끝을 달리는 이 노래가 보노보의 작품임을 처음엔 믿지 못했다. 데뷔 앨범의 분위기가 최근작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게 되어 그의 매력도가 상승했다. 

이 곡은 시작하자마자 시, 도#, 레 음이 한꺼번에 연주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협화음이 섞인 파#-시-라 음이 이 곡을 관통하는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4박, 7박, 10박, 15박에 강세가 들어간 드럼은 이 곡에서 에너지와 혼란을 동시에 주는 완벽한 균형자다. 

"Silver"을 들으면 일견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이지만, 한편으로는 매혹적이고 뇌쇄적이기도 하다. 악마와의 거래나 금지된 밀회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듣기가 두렵지만 결국 찾아듣게 되는 묘한 곡이다.


Radiohead - Codex

우울함을 논할 때 라디오헤드가 빠질 수 있을까. 앞선 곡들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관조하는 매력을 가진 곡이다. 메이저 코드들을 많이 쓰고도 이렇게 가라앉는 곡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라디오헤드.. 그래서인지 약간의 희망적인 기분도 발견하게 되는 곡이다. 특히나 관악기들이 해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깔아주는 2절에서 그렇다.

이 곡들은 모두 '우울한' 곡들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감정들은 경험에 기반한 게 아니라 굉장히 관념적이다. 언어의 틀에 갖힌 감정인지 음악의 내재적인 속성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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