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랠런드 & 길리언 브라운 - 센스 앤 넌센스


학창시절 생물 전공은 물리나 수학 등의 전공자들에게 천대받던(?) 기억이 있다. 세상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논리적이고 군더더기없이 풀어내는 아름다운 학문들에 비해 생물은 그런 '상위 학문'들을 빌려 온 단어 외우기 시험 같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 '파생된' 또는 '쉽다'고 여겨지는 학문들을 연달아 택한 건 운명인지 선택인지 모르겠다. 이 책 <센스 앤 넌센스>를 읽으면서는 생물학이 상당 부분 인문학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섯 갈래의 '인간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는 다섯 갈래 세부학문(인간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들은 각자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자신이 옳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행태와 그 기저 심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진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각각 필요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데이터가 부족하고 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수학적 모델링부터 설문조사까지 다양한 연구 방법이 필요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너무나 성급하고 주제넘은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어떤 면에서는 경영학 연구를 보는 듯하다.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고,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사고의 틀이 동원된다. 그 중 적어도 일부는 서사적이거나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유전공학이나 뇌과학 등의 분야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진화 연구는 더욱 '과학적'인 접근에 가까워질 것이나, 여전히 재현이 불가능하고 데이터가 부족한 이상 서사적인 논의를 완전히 배제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생물학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가 좋다. 물론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매우 조심스럽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에, 진화론과 관련된 논의는 통섭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과학의 영역이지만 아직 수학의 언어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다양한 학문 분야가 등장하고, 많은 대안 가설들이 서로 연관돼 있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느낌은, 변이와 경쟁과 유전을 통해 나타나는 차가운 자연선택의 과정을 마치 개체들이나 환경이 능동적으로 자주적으로 행하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서술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 책을 통해 진화론의 다양한 개념과 이론적 틀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이론들이 어떤 배경에서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사회생물학을 선도하는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유전자 결정론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특정한 행동에 관여하는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개체의 번식 성공률은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자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언급할 때는 여전히 많은 혼란이 생긴다. 하나의 유전자가 특정한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고 해서, 그러한 행동패턴이 하나 이상의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거나 고정적이거나 불가피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전자 이외의 요인들도 행동발달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런 영향은 대체로 유전될 수 없기 때문에 진화론적 분석에서는 무시해도 좋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행동생태학자들의 관심은 '환경요인이 (절충에 수반되는) 비용 및 이익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된다. 동물이 직면한 절충의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신체적 노력과 번식 노력 간의 절충으로, 이것은 '자신에게 투자할 것이냐, 아니면 새끼에게 투자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두 번째는 직접 번식과 간접 번식 사이의 절충으로, '자신이 직접 번식할 것이냐, 아니면 친척의 번식을 도울 것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짝짓기와 양육투자 간의 절충으로, '더 많은 짝을 찾아 나설 것이냐, 아니면 현재의 새끼에게 투자할 것이냐'의 문제다. 네 번째 절충은 '새끼의 수와 질 중 어느 쪽에 투자할 것인가'의 문제로 요약된다.

진화심리학이 진화생물학의 복잡성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는 또 있다. 예컨대 코스미디스와 투비는 "인간의 복잡한 정신구조는 플라이스토세 동안 현대와 거의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 후 사소한 조정만 거쳤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복잡한 형질은 서서히 진화한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 가정이 옳은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야생 동식물에서 나타나는 자연선택을 관찰하고 다양한 실험을 실시해본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는 극도로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에 따르면 때로 몇 세대 만에 중요한 유전자 및 표현형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문화는 자연선택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문화활동을 함으로써 문화활동을 보이지 않는 경우에 비해 유해한 대립유전자들(예: 근시와 관련된 유전자)를 많이 보유하게 된다. 이 유전자들은 본래 유해하지만, 인간은 문화(예: 안경)의 힘을 빌려 그 악영향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 만약 초기인류의 진화가 스스로 구축한 선택압력에 대응하여 이루어졌다면, 인류의 조상들은 - 다른 포유류의 조상들과는 달리 - 국지적 환경의 압력에서 점차 자유롭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예측은 '때로는 문화적 요인이 국지적 환경보다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의 변이를 더 잘 설명해주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집단선택에는 좀 더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 사실 집단선택은 '이타적인 개인'을 직접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기적인 집단'을 선호한다. 문화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은 타집단의 구성원을 향한 적개심과 공격성,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외부인을 비방하는 흑색선전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가장 훌륭한 동기'와 '인간 사회의 최악의 속성'이 모두 집단선택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제1장에서, "동물행동학자인 니코 틴베르헌(1963)이 제기한 '어떤 동물은 왜 특정 행동패턴을 나타내는가?'라는 의문은 네 가지 상이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네 가지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 행동의 기능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특정 행동이 동물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가? 둘째, 특정 행동의 진화사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그 동물의 조상들은 어떤 상태였고, 그 행동이 진화되는 과정에서 후손이 받았던 선택압력은 무엇인가? 셋째, 개체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하게 한 근접 원인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감각 입력, 신경 메커니즘, 행동 작동 시스템 중 어떤 것이 특정 행동을 유도한 직접적 원인인가? 넷째, 동물의 발달 과정에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생애의 적절한 단계에 그 행동이 발현되도록 안내해주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처럼 동물의 행동패턴을 다양한 측면에서 탐구하다보면, 5가지 진화론적 접근방법의 상보성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예컨대 인간행동생태학 연구는 특정 행동패턴의 기능을, 진화심리학 연구는 그 행동패턴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 ...
...하지만 영아살해 문제를 분석할 때는 인간으로 하여금 영아살해를 자행하게 했던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등 인접분야로부터 영아살해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문화진화론자들은 영아살해의 원인보다는 인구통계학적, 진화적 결과를 탐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이들의 연구는 영아살해를 좀 더 광범위하게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들은 진화론적 관점의 다원성을 옹호한다. 상이한 방법론이 상호 보완적이라면, 연구자가 스스로 하나의 연구방법에 얽매일 까닭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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