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이발관을 접한 것은 다섯 번째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앨범이 나올 수 있나, 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사운드가 너무나 깔끔하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 앨범이 나온 2008년은 장기하와 얼굴들, 검정치마, 김창완밴드 등 귀가 즐거운 뮤지션들이 많았던 해로 기억하는데, 그 정점은 언니네이발관의 앨범이었다.
그로부터 거진 10년이 흐른 뒤 나온 6집 앨범은 흐른 세월만큼 진화한 사운드를 또 한 번 깔끔하고 정확하게 집어낸 듯하다. 마지막 앨범이라는 컨셉보다는 '이것이 현대 밴드의 사운드다!'라는 일갈이 귀에 들어오는 것만 같다. 첫 곡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의 6마디짜리 전주에서부터 심상치 않다. <마음이란>에서 등장하는 신디의 톤은 곡과 별개로 마음에 남는다. <나쁜 꿈>의 몽환적이고 훵키한 사운드와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의 Beck스러운 포크와 기타 솔로는 개인적으로 꼽는 앨범의 정점이다. 선공개되었던 마지막 곡 <혼자 추는 춤>은 첫번째 곡과 궤를 같이하는데, 언니네이발관다운 애잔한 코드진행에 귀에 박히는 기타소리와 공간감이 좋다.
너무나 아쉬운 건 가사를 포함한 보컬이다. 굉장히 세련된 형태로 진화한 사운드에 비해 창법과 멜로디는 어딘지 아쉽다. 이석원은 좋은 멜로디 메이커이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사실 멜로디보다는 기타 리프나 사운드적인 측면이 훨씬 귀에 남는다. 또 변화한 사운드에 맞추어 가사도 다양한 주제를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특별히 또 아쉬운 트랙이 아이유와 함께한 <누구나 아는 비밀>인데, 기존의 팝송 구성에서 벗어나 여러 테마를 붙이는 등의 시도는 신선하나 귀에 와닿지는 않는다.
나는 언니네이발관의 4집 <순간을 믿어요>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를 정말 좋아한다. 4집은 팬들에겐 왠지 외면받는 앨범인 듯 한데, 나는 이 앨범의 거칠면서 팝적인 느낌이 정말 좋다. 밴드 사운드의 원숙미를 보여준 5집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 앨범임을 정해 두고 만드는 앨범이라니 정말 어색하고 실감이 나지 않지만, 거친 매력과 정제된 매력을 보여준 앞의 두 앨범에서 이렇게까지 진화한 사운드를 보여주고선 더 이상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아쉽다. 나는 예전에 비해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의 감흥이 많이 퇴화했지만, 그래도 들을수록 놀라게 되는 이 사운드를 꽤 자주 찾아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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