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와할랄 네루 - 세계사 편력 (1권)

3년간 옥중에서 딸에게 보낸 196통의 편지. 다른 것을 떠나 분량부터가 압도적이다. 600쪽의 1권이 약 18세기까지의 세계사를 압축하고 있으니, 비슷한 분량의 나머지 두 권에는 저자가 편지를 완성할 당시인 1930년대까지의 약 200년의 역사가 그야말로 농축되어 있을 터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국가의 저항운동을 이끄는 주체로서,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침탈의 역사를 얼마나 방대하게 또 알기 쉽게 서술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역사 덕후(였)지만 의외로 세계사에 문외한인 나에게 이 책은 충분히 훌륭한 입문서다. 그러나 이 정도의 평가로는 이 작품의 의미를 드러내기엔 충분하지 않다. 딸 사랑과 감옥생활에서의 의지가 묻어나는 따뜻한 책이다. 또한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작가의 개인적인 배경과 시대를 생각할 때 배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내 처음의 우려와 달리 (동시대에 영국인이었던 조지 오웰과는 다른 느낌의) '합리적이면서 인류애를 가진' 저자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비단 역사적 지식 뿐 아니라 인간 집단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방대한 세계사를, 그것도 초등학생 나이의 딸을 대상으로 최대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흔적이 곳곳이 엿보인다. 요즘에야 이런 역사책들이 그래도 많이 나오고 있다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한 것 같다.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사에 대한 내용이 적어 아쉽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14세기부터 그후에 걸쳐서 전개되는 종교적 자유를 위한 투쟁과 이어서 일어나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은 실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한 투쟁인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과 교황의 통치는 양쪽이 모두 절대 권위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그것들은 인간의 정신을 질식시키려고 해온 것이다. 황제는 '신권'에 의하여 옹립되고 교황은 한층 더 그러하였다. 그 누구도 이것을 의심하고 명령에 반항할 권리는 없었다. 복종이야말로 미덕이었고 개인적인 판단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조차 큰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맹목적인 복종과 자유 사이의 논점은 극히 명백하였다.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유럽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커다란 코통이 따랐으나 어느 정도까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목표가 달성된 것을 축하한 바로 그때 그들은 새로운 모순을 발견하였다. 즉 경제적 자유가 없고 빈곤이 존속하는 한 참다운 자유는 없다는 점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자유의 쟁취를 촉구하는 것은 그를 조롱하는 데 불과했다. 그래서 다음 단계는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고 이 싸움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다. ...

첫째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농민 전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지독한 농민의 곤궁과 고통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부르주아의 대두와 생산력의 발전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 많은 노동력이 생산에 투입되었으며 따라서 더 많은 교역이 이루어졌다. 셋째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은 교회가 최대의 지주를 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의 방대한 특권 계급이며 두말할 것도 없이 봉건 제도의 존속으로 커다란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회는 그 부나 재산을 한꺼번에 박탈당할 우려가 있는 어떠한 경제적 변화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므로 로마에 대한 종교적 반역이 일어났을 때 그것은 경제 혁명과 보조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 경제 혁명은 모든 방면 - 사회적, 정치적인 변혁을 수반했거나 아니면 변화의 소지를 마련해주었다. 16, 17세기의 유럽을 충분한 거리를 두고 개관해보면 이들 일체의 활동과 운동 및 변화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대의 가장 큰 세 가지 운동으로서 르네상스, 종교 개혁 및 정치 혁명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의 배후에는 모든 변혁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경제 혁명을 초래케 한 경제적인 궁핍과 혼란이 만연되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굴 제국은 이와 같은 경제적 변화 때문에 쓰러졌다. 그러나 인도에는 이 파탄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중간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 영국에 존재하고 있던 것과 같은 이들 게급을 대표하는 조직 또는 평의회도 없었다. ... 그러나 이 편지의 뒷부분에서 말하게 되겠지만, 인도에서도 때로는 봉건적인 세력에 의해서 혹은 부르주아에 의해서, 아니면 농민들에 의해서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며, 그 중의 어떤 것은 다소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특기할 만한 것은 역시 봉건 제도의 와해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갖추었던 중간 계급의 대두와의 사이에 어떤 갭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갭이 존재한 곳에서는 독일의 경우처럼 혼란이 오고 갈등이 일어난다. 인도에서도 역시 그랬다. ... 그들은 멀지 않아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 즉 최근 본국에서 승리를 거둔 영국 부르주아의 대표자와 만나게 된다. 이 영국의 중간 계급은 봉건적인 질서에 비해서 더 높은 사회 질서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 도처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한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 ... 

인도 역사가 특별히 자세히 나오는데 (인도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족과 종교와 계급의 도가니다), 이를 서술할 때는 저자의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조금은 덜 객관적이면서 민족주의적이면서 마르크스적인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저자가 처한 상황 하에서는 (더군다나 감옥 안에서) 그 정도의 애국심도 발휘하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위상과 처지가 뒤바뀌게 된 배경은 <총, 균, 쇠>를 비롯한 여러 대작들의 주요 주제인데, 이 책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있다. 다만 조금 감상적이다. 예컨데 중국의 문화가 '황혼기'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문화 자체는 오래돼 갈지언정 문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될텐데, 어째서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유럽과 같은 폭발적인 변화와 발전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 책의 2권과 3권에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역시나 제도적 문화적 과학적 요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들이 다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중국이 이렇게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다른 방면 - 과학상의 발견, 발명 등에는 진보를 이룩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유럽의 여러 국민은 그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똑똑히 보아 알고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은 활력과 모험과 탐구의 정신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평온한 생활을 좋아하고 자기의 고전이나 예술에 탐닉한 나머지 새로운 위험에 맞서거나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타파한다거나 하는 것을 주저하는 중년층과,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정력과 지식욕이 넘쳐 흐르고 도처에서 모험을 찾는 청년과의 차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틀림없이 위대한 미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후나 아니면 황혼기의 잠잠한 아름다움이었다.

그 시대의 유럽의 역사는 경제적인 또는 그밖의 다른 큰 변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고 또한 교훈도 풍부하다. 이것을 같은 시대의 인도나 중국 혹은 또 다른 어떤 나라의 역사와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 이미 말했듯이 양국, 즉 인도와 중국은 모두 당시 각 방면에 걸쳐서 유럽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유럽 역사의 활기찬 움직임에 비하면 그 두 나라의 역사는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도 중국에도 위대한 군주나 인물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고도로 발달한 문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인도가 그렇지만, 대중은 생각이 부족하고 피동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렇다 할 찬반의 태도를 표명하지도 못하고 왕조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얌전해졌으며 권위에 대해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복종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의 역사는 때로는 흥미를 끄는 일도 있었지만 인민이 살아 움직이는 기록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사건이나 군주의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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