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2)


Funky 하고 그루비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꾸준히 있었고 특히 롤러코스터 이후로 2000년대 중반은 인디씬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좋은 밴드들이 많이 나왔지만, 롤러코스터만큼 자신들의 색깔을 강하게 내보이면서도 세련미와 친근함을 보여준 팀이 있었을까 싶다. 1집과 2집에서 보여준 기조를 유지했어도 충분히 좋았을 텐데, 3집 <Absolute>에서 이들은 극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클래식한 키보드 소리 대신 EP가, 드럼 대신 전자비트 소리가 전면에 등장한 3집은 애시드재즈 팝 풍의 소리를 벗어던지고 하우스와 라운지를 위시한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준다. 3집부터의 특징은 첫 번째 트랙들을 인트로 삼아 앨범 전체의 기조를 선언하고 들어간다는 점인데, 이 인트로 곡들이 또 대단한 곡들이다. 3집의 인트로 <Absolute>만 들어도 전작들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변신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햇살 받으며 익숙한 동네를 거니는 장면 대신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에 한밤중에 혼자 떨구어진 느낌이 떠오른달까. 다섯 앨범 중에서 롤러코스터 하면 떠오르는 '도시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앨범이 아닐까 싶다. <Last Scene>이라는 킬러 트랙을 필두로 하여 <라디오를 크게 켜고>, <D-Day>, <Speechless> 등 명곡들이 포진한 이 앨범은 극적인 변신만큼이나 높은 판매량으로 보상을 받았다.



네번째 앨범 <Sunsick>의 인트로 트랙인 <Sunsick>은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돋는다. 3집의 어두운 밤의 도시를 거닐던 기분에서 한순간에 벗어나 무더운 야생에서 햇빛 받으며 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바같은 리듬과 겹겹이 쌓이는 화음이 정말 좋다. 마디 중간에 갑자기 들어오는 기타와 마지막에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여운을 주는 화음이 압권이다. 같은 기타 리듬과 화음이 유지되는 두번째 곡<해바라기>를 들을 때쯤 비로소 새로운 롤러코스터에 올라탔음을 깨닫게 된다.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롤러코스터 앨범 중 가장 실험적이면서 앨범 전체가 탄탄하고 멤버들의 연주력도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3집의 후반부에 내포된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가 4집에선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고, 라틴 리듬과 멜로디가 곳곳에 배여 있어 복고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직선적이고 담담한 보컬과 가사, 그리고 롤러코스터만의 분위기와 감성은 여전히 새롭고 신선하다. 롤러코스터 앨범들이 그렇듯 버릴 곡이 없지만, <비행기>의 기타 멜로디는 2집의 <Love Virus>의 그것과 함께 무한반복되어도 좋을 것 같다. Where The Story Ends의 배영준이 작사로 참여한 <비상>은 원래 좋아하던 곡이었지만 최근 다시 들으니 후반부 연주와 프로듀싱이 매우 인상적이다. 마지막에는 인트로에서 빨려들어간 그 새로운 곳에서 확 빠져나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어김없이 롤러코스터 앨범 마지막에 배치된 어쿠스틱 사운드의 <Flyin' Away>로 편안하게 착지한다. 타이틀곡 <무지개>를 리믹스한 곡으로 마무리되는 앨범의 유일한 약점은 확실한 킬러 트랙이 없다는 점 뿐 아닐까. 



상에서 출발해 어둠의 도시를 거닐다 태양이 작렬하는 어딘가로 떠났던 여행은 5번째 앨범 <Triangle>의 인트로에서 다시 일상의 소리로 돌아온다. 이 인트로는 4집의 인트로와 함께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너무나 편안한 기타에 허밍이 얹힌 인트로를 시작으로 롤러코스터는 앨범 전체에서 원숙미를 마음껏 뽐낸다.   지난 앨범과 궤를 같이하는 <내가 울고 웃는 사이>는 반복되는 기타 리프와 기타 멜로디가 중독성있다. 또 어떤 일상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나른하고 알싸하다.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등장하는 어쿠스틱기타 반주에만 의존한 <눈을 한번 깜박>을 지나 사랑을 테마로 하는 세 곡이 이어진다. 솔직하고 담백한건 그대로지만 지난 시간만큼 농익었다. <숨길 수 없어요>는 다소 히트곡을 노린 느낌이고 <님의 노래는> 약간의 뽕삘이 느껴지지만 (솔로에서 특히 그렇다), <두사람>의 특이한 보컬 스캣과 튀는 베이스 톤이 참신하다. 
다시 차분한 instrumental을 지나 일상과 사랑 이야기로. 반복되는 월요일을, 음성사서함 소리를 매개로 한 애틋한 마음을, 아무도 몰라주지 않는 마음을 시종일관 약간은 어둡고 차분한 어조로 노래한다. 사운드 면에서는 3집의 재현 같은 <다시 월요일>과 <After The Tone>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앨범의 백미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애써 다독이는 <괜찮아요>, 그리고 <내가 울고 웃는 사이>의 리믹스를 끝으로 앨범은 여운을 남기면서 마무리된다.

우울함이라곤 없을 것 같은 애시드재즈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애틋한 슬픔에 젖은 듯한 멜로디와 가사의 조합은 이율배반적인 조화다. 세련된 사운드와 외로운 정서, 그것을 지극히 담백하고 깔끔하게 푸는 음악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스타일의 변화와 함께 캐치한 멜로디가 조금 덜어진 감은 있지만 그것을 벌충하고 남을 새로움이 있다. 

롤러코스터의 유일한 (하지만 나에겐 꽤 큰) 약점을 꼽자면 이들이 사실상 스튜디오 밴드였다는 점일 것이다. 자미로콰이처럼 화려한 세션을 동원한 라이브 영상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라이브 앨범이 하나 있긴 하지만 전 세션이 출동한 라이브는 아닌 듯하고, 셋의 구성에 최대한 맞게 편곡된 곡들도 많다. 어찌됐든, 2000년대 중반의 인디신에 모던락에 대항하는(?) funky하고 세련된 하나의 씬을 가져온 주인공이 롤러코스터라면 과장일까. 개인적으로도 베이스를 가장 열심히 들은 한국 뮤지션이 지누고, 가장 그루비한 기타+베이스 조합을 꼽으라면 이상순+지누를 들 것이며, 가장 음악적인 영향을 많이 준 국내 뮤지션을 꼽으라면 롤러코스터를 단연 첫손에 들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