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1)


소리바다에서 곡을 하나씩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아 듣던 시절, 어떻게 알고서 다운 받았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롤러코스터의 곡 3개가 들어 있었더랬다. <내게로 와>, <Love Virus>, <Last Scene> 이렇게 세 곡을 판화 만들기 과제를 하면서 질리도록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음악을 잘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딘가 몽환적이고 씁쓸한 감성 하나만으로 나를 사로잡던 노래들이었다.

이들의 앨범을 찾아 듣게 된 건 그로부터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내 취향을 말로써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겠지만 아주 거칠게 해보자면 쌉쌀한 감성에 탁월한 연주와 느낌있는 편곡이 얹혀진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롤러코스터의 음악은 거의 모든 앨범에서 이런 내 취향을 정확히 저격한다. 그것도 각기 다른 음악으로. 언제 들어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그 감성에 젖어들게 만드는, 그러나 딱 감정을 소진하거나 감정에 파묻히지 않을 정도로만 기분을 몽글하게 만들어 기어이 다시 찾게 만드는 음악이다. 

'이 시대에 이런 세련된 음악이', '오늘 발매된 음악이라 해도 믿겠다' 류의 댓글이 지금까지도 달리는 편곡과 레코딩은 상당부분 지누의 공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롤러코스터의 씨앗은 지누 2집에서 이미 찾을 수 있다. 많은 곡에 조원선이 참여하고 있는 점도 그렇지만, <세레나데>나 <안녕> 같은 곡만 들어 봐도 롤러코스터의 첫 두 앨범을 관통하는 감성과 편곡을 잉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롤러코스터는 밴드 자체로서 출발했다기보단 지누 자신의 음악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시작한 느낌인데, 1집 앨범이 발매되기 전 인터뷰에서 본인의 3번째 앨범은 조원선씨와 함께한다는 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롤러코스터를 '청룡열차' 라며 설명해주는 수수하고 수줍은 인터뷰

개인적으로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두 개로 나누자면 3집 <Absolute>를 기점으로 하고 싶다. 1집 <Roller Coaster>와 2집 <일상다반사>는 듣고 있자면 비 온 다음날 아파트 단지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느낌이다. 일상의 소리로 시작해(내게로 와) 일상의 소리로 끝난다(일상다반사).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날 무심히 떠오르는 기억에 젖어든다. 약간 알싸하지만 이내 쿨한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 Brand New Heavies나 Jamiroquai 식의 그루브있는 연주에 20년 전 음악임이 믿겨지지 않는 깔끔한 레코딩 (심지어 홈레코딩이라니), 세련되면서 담백한 멜로디와 보컬과 가사의 조합 덕분이다. 이들의 초기 음악을 애시드재즈라는 장르명으로 퉁치곤 하는데, 애시드재즈 자체가 여러 음악적 요소들의 퓨전 느낌이라 정의가 어려운 데다가, 롤러코스터 특유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는 조금은 부족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데뷔 앨범은 '애시드재즈' 류의 그루브있는 곡들과 몽환적이고 멜랑꼴리한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모든 노래들이 캐치한 멜로디를 들려 주고,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이 모든 소리가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운드의 완성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랑과 일상의 감정을 담담하고 조금은 쓸쓸하게 이야기하는 가사까지. <내게로 와> 나 <습관> 이야 워낙 히트한 곡들이니 두말할 것 없지만, 나는 <어디있나요> 또는 <Just One More Night> 같은 몽환적인 트랙도 즐겨 듣는다. 



1집의 연장선상에서 더 완성도를 높인 2집은 아예 한국 대중음악 명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1집이 히트곡이나 참신함에서 좀더 애정이 가기도 하지만, 앨범 전체의 완성도나 흐름에서 2집이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나 싶다. <가만히 두세요>, <힘을 내요, 미스터 김>, <떠나가네>, <Runner> 같은 노래에서 느껴지는 짙은 애시드재즈의 향기를 롤러코스터만큼 세련되게 만들어낸 팀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 지누는 천재인 것 같고 조원선은 대체불가이며 이상순은 얄미울만큼 적절한 잽잽이와 솔로를 들려준다. 사실 애시드재즈라고 퉁치기 미안한 곡들인데, 특히 <떠나가네> 같은 사운드와 편곡은 자우림스러운 락에 일렉트로닉의 요소까지 짙게 들어 있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넘나들며 묘한 감정의 변화를 들려주는 첫곡 <너에게 보내는 노래>는 브릿지 이후 코러스 파트와 메인보컬 파트가 교차하면서 색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고조시킨다. 사실상 타이틀곡인 <Love Virus>는 시종일관 비슷한 템포와 분위기로 끝난 사랑을 읊조리는데 쓸쓸한 기타 멜로디는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것만 같다. 중간중간 포진한 연주곡들(<Crunch>와 <Breezy>)은 멤버들의 원숙한 호흡을 들려 준다. 잔잔하게 롤러코스터의 두 테마인 사랑과 일상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두 곡 <어느 하루> 와 <일상다반사>는 이들의 '담담하게 애잔한' 감성을 드러낸다. 특히 <어느 하루>는 앨범의 숨겨진 백미다. 


<어느 하루> 롤러코스터 라이브가 없으므로 조원선 솔로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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