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경 - 나의 가역반응


새로운 음악, 특히 한국의 인디 음악을 진지하게 들은 지 오래 되었다. 음악을 주의깊게 연주하거나 체득하는 노력을 한 기억도 이제는 꽤 오래 전이다. 이렇게 더 이상 음악의 폭이 넓어지지 않던 중에 들은 신해경의 앨범 [나의 가역반응]은 오랜만에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이었다.


신해경 - 모두 주세요 (M/V)

공간감, 딜레이가 풍성한 기타와 보컬 멜로디가 귀에 꽂히고, 뒤이어서 묵직하게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운드가 지루할 틈 없이 감정을 조였다가 푼다. 타이틀곡 '모두 주세요'를 처음 들었을 때, 잊혀진 쌉쌀한 감정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미처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물결을 김윤하라는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 우리 마음 속 익숙한 그리움을 끝없이 자극한다. 당장 도망치고 싶다가도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은, 영원히 잠겨 있고 싶지만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영혼을 좀먹고 말 감정의 찌꺼기가 내내 방울 져 맺힌다. 참으로 잔인한 친절이자, 아름다움이다."

특히나 내게 인상적인 건 악기들이 치고 빠지는 순간이 가사 및 보컬의 딕션과 잘 맞는다는 점이다. '너의 눈과 입과 몸과' 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악기가 빠졌다가 2박 4박에 강하게 들어오는 부분을 비롯하여, 세세하게 말하자면 너무나 많다. 나는 평소에 가사를 자세하게 듣는 편은 아니지만, (특히 우리말 노래에서) 이렇게 가사가 사운드와 합치되는 느낌을 받으면 노래가 한층 더 와 닿는다. 

신해경 - 화학평형

'모두 주세요'를 필두로 하는 앨범을 다 들었을 때, 최대한 공간감을 줬지만 빈티지하고 fuzzy한 느낌을 함께 갖춘 기타 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여린 고음의 보컬은 그 위에 묘하게 어울리는데, 가사는 잘 들리지 않는 점이 차라리 또 하나의 악기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섬세한 감정선을 딱 적당한 선에서 표현하는 목소리다. 드럼은 튀지는 않지만 단단한 모던 락 비트로 받쳐준다. 많은 음악을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넬, 피터팬컴플렉스, 로로스, W, 어떤 날 등등의 밴드들이 떠오르는데,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고 저런 밴드들의 요소들을 분명히 갖추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확실히 이 앨범의 사운드는 특별한데, 최근의 음악 추세답지 않게 기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전혀 오래되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굉장히 세련된 톤과 이펙트를 잘 잡아낸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코드 진행과 멜로디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앨범은 분명히 곡 단위로 뿐 아니라 앨범 전체로 한 번에 들을 가치가 있다. 사랑의 끝자락에서 시작하는 앨범은 사랑의 기억이 흐려지면서 끝맺는다. 지난하고 쓸쓸한 과정의 기승전결을 다양한 사운드와 가사로 담아내고 있다. 이상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따온 앨범 타이틀은 마지막 곡의 제목 '화학평형'과 어울리면서, 앨범을 관통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해낸다. 또 각각의 노래는 끊어지지 않고 조화롭게 연결된다. 특히 2, 3번 트랙 '몰락'과 '모두 주세요, 5, 6번 트랙 '다나에'와 '화학평형'를 잇는 구간은 짧은 순간이지만 몰입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몇몇 기타 솔로는 앨범의 분위기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것 같다. 두번째 곡 '몰락'과 타이틀곡 '모두 주세요'의 후반후 기타 솔로가 그러한데, 노래의 감정과 따로 놀아서 겉도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아주 일부이고, 나머지 솔로나 기타 멜로디는 흠잡을 데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곡 '화학평형'에서 딜레이를 잔뜩 건 채 '기억 속에 흐려지네~' 뒤에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톤이나 이펙트나 멜로디나 정말 대단하다.

세련된 사운드와 그리움을 자극하는 가사와 쌉쌀한 코드와 묘하게 어울린다. 감정을 후벼파지는 않기에 계속 꺼내보고 싶게 만드는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많은 자극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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