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큼 힘든 시기라는 건 특별히 없었지만, 그래도 기숙사에서 지내던 때는 지속적인 외로움의 시기였던 것 같다. 모든 불이 소등되면 말없이 2층침대에 누워서 MP3 플레이어의 콜드플레이 노래로 잠들곤 했다. "In My Place", "Don't Panic", "Trouble" 같은 멜로디는 우울함을 극한까지 끄집어내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X&Y>가 나왔을 땐 거의 유일했던 친구와 밤을 새면서 끝없이 반복재생했다 (물론 밤을 샌 건 시험 때문이었다). 뭘 얘기해야 할 일이 있으면 'Let's talk, let's talk~' 하는 "Talk" 노래를 드립(..)삼아 불렀던 기억이 있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청량한 냄새가 느껴졌던 건 그 날들의 새벽 공기 버프가 한 몫 한다. 시간이 가면서 기억의 힘은 조금씩 줄었지만, 최근 다시 <X&Y>를 들었을 때 예전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2005년 발매된 콜드플레이의 세번째 앨범 <X&Y>는 이들의 초기 사운드의 완성이자 <Viva la Vida> 이후의 극적인 전환의 시작이다. 전작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올라갔고, 다소 거칠고 조악해 인디 티가 났던 사운드의 밸런스가 잡혔다. 소리가 빈 공간은 풍성한 현악과 신스가 채웠다. 기타 중심의 얼터너티브, 브릿팝스러운 감성에 약간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일렉트로닉의 영향을 섞었다. 올타임 레퍼토리가 된 "Fix You" 같은 곡들이 화룡점정을 찍으면서 콜드플레이는 세계최고의 밴드 중 하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Coldplay - Square One (Later with Jools Holland Live)
"Square One"은 아마 콜드플레이 역사에서 가장 자신감 넘치는, 오프닝곡다운 오프닝곡일 것이다. 처음 조용하게 깔리는 신스와 기타에 얹힌 멜로디가 한 챕터를 새로 여는 듯한 신비주의 컨셉의 느낌이다.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건 바로 멜로디가 도리안 모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안의 핵심 음인 6th를 벌스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후렴에서는 도리안과 자연단음계를 오간다), 마이너 감성을 살리면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빠른 비트와 터져나오는 에너지. 앨범을 들을 때마다 상쾌한 기분이 드는 이유다. 마지막에는 크리스마틴의 피아노연주와 꿈결같은 멜로디만 남는, 자연스럽게 "What If"로 이어지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Coldplay - What If (Live in Toronto 2006)
"What If"는 처음부터 가장 좋아했던 노래다. 데뷔앨범의 "Trouble"을 잇는 듯한 감성과 호소력에, 기승전결의 다이나믹이 확실하다. 이 곡은 2006년 토론토 라이브를 보아야만 한다. 슬라이드 기타 인트로, 환호와 떼창, 후렴의 에너지, 2번째 벌스 마지막 조니(기타리스트)의 감정, 그리고 고음을 찍던 기타가 곡의 막바지에서 갑자기 드라이브를 확 걸면서 클라이막스로 달려갈 때 크리스마틴과 조니를 포함한 모든 멤버들의 몰입까지 놓칠 장면이 없다. 곡의 힘도 그렇지만 하나의 팀으로 완성된 콜드플레이의 진가를 볼 수 있는 클립이다.
Coldplay - White Shadows
이 앨범을 듣다 보면, 홀수 트랙은 보통 사이키델릭하면서 스피드가 있는 곡으로, 짝수는 파워풀한 발라드 느낌의 곡으로 채워진 걸 알 수 있다. "White Shadows"는 그런 맥락에서 첫 곡 "Square One"과 궤를 같이하는 빠른 비트의 노래다. 사실 코드진행은 단순한데도 곡이 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데, '라시도레미' '도레미파솔라시도' 같은 굉장히 단순한 steps와 음을 몇 계단씩 넘는 skips를 정말 잘 활용한 멜로디 덕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콜드플레이답지 않은(?) 빠르고 신나는 리듬, 엇박의 베이스, 언제나처럼 절묘하고 달콤한 기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시 "Square One" 같은 분위기의 전환이 기다리고 있다.
Coldplay - Fix You (Live in Paris 2012)
"White Shadows"의 마지막 Ab 마이너 코드에서 "Fix You"의 첫 Eb 메이저 코드로, 부드러운 올간 소리로 바뀌며 자연스럽게 넘어온다. 사실 "Fix You"는 처음 앨범을 들을 시기엔 딱히 귀에 들어오던 곡은 아니었다. 처음 열심히 들은 건 어쩌다 이 곡을 공연에 올리게 되면서였는데 (그러고보니 콜플 노래를 두 곡이나 공연했다), 이 곡의 치유의 힘을 그때서야 느꼈다. 두 번째 후렴 이후 기타와 드럼이 연이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장면은 언제 들어도 극적이다. 묵직한 드럼비트도 반복되는 단순하고 강력한 기타 멜로디도 가스펠스러운 화음이 들어간 팔세토도 모두 이 극적인 치유를 돕는다. 아주 마이크로하게는, "I pro-mise you~" 할때 찰나의 딕션이 감동을 조금 더해주기도 한다. 오르간과 가스펠이 들어간 고전적인, 그리고 가장 극적인,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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