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긴장이 한순간 풀어진 탓인지 두통과 함께 어제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일찍 잠들기는 틀린 것 같아 예전에 듣던 가장 익숙하고 편한 음악들을 뒤적거리다, 문득 스매싱 펌킨즈가 생각났다. 캠프 참여차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름도 생각 안 나는 미국인 룸메이트가 선물해준 베스트 앨범 <Rotten Apples>. 아주 가끔씩 찾아 들을 때마다 웨스트라파옛의 새파란 하늘과 비현실적으로 크고 하얗게 느껴졌던 뭉게구름이 생각난다. 간만에 트랙 리스트들을 흘려 듣다가, 새벽 2시 감성에 제일 어울리는 노래를 건지고 말았다.
Smashing Pumpkins - Eve
이 노래는 좋은 스피커나 이어폰에 틀어서 꼭 처음부터 끝까지 스킵 없이 들어보자. 지금의 내 기준으론 이들 작품 중 최고 중 하나이자, Beck과 Radiohead가 떠오르는, 90년대 락음악의 성취다. 음산하고 노이지한 멜로디, 드럼머신으로 찍은 효과적인 리듬, 중반 이후의 빌드업과 침잔하는 소리들에 마지막 아웃트로까지. 그리고 (분명 이전에 몇번 들어봤던 노래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오랜만에 음악을 듣다가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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